지난 편까지 우리는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시대, 그리고 삼국시대를 통일시킨 신라까지 알아보았다.
[독서] 최소한의 한국사(1. 고조선, 고구려)
어릴 적부터 역사 과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나는...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아이가 나에게 역사에 대해 물어보면 부끄럽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어쩌다 외국인과 친해졌을 때,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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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최소한의 한국사(2. 백제)
이 전편에서 우리나라의 역사 시작인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멋쟁이 고구려를 알아보았다. [독서] 최소한의 한국사(1. 고조선, 고구려) 어릴 적부터 역사 과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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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최소한의 한국사(3. 신라)
이번에 알아볼 우리나라의 역사는 "신라"이다. 이전 편에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독서] 최소한의 한국사(1. 고조선, 고구려) 어릴 적부터 역사 과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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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삼국을 통일시킨 신라, 즉 "통일신라"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다.
1. 삼국을 통일시킨 신라의 왕 "문무왕"은 통일 후 백성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진 않을까 항상 걱정했다고 한다.
2. 그런 걱정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경주 감포라는 곳에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삼국을 통일했다는 압도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경주를 가보면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3. 물론 삼층석탑이 짠!! 하고 지어지는 건 아니였고, 당시 기술로도 한 세대를 거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 때 완공되었다고 한다.
4. 이런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인지 통일신라는 200여년 가까이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5. "신문왕"은 통일신라의 기틀을 다양한 분야에 있어 완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있어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잘 추진했다고 한다.
6. 교육할 때도 왕권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기본으로 복종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독재라고 생각할 만 한데, 당시에는 저런 방법 외에는 나라를 이끌어갈 방법이 없었거나, 아직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7. 그 후 영향력이 강한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녹읍"을 폐지했는데, "녹"은 일을 한 대가이고, "읍"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읍, 면, 동" 이런 것을 말한다. 즉, "녹읍"은 일한 대가로 지역(읍)을 귀족들에게 준 것인데 이것을 폐지한 것이다.
8. 또한,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총 3가지 종류였는데 "조세", "공납", "역"이였다.
"조세"는 땅에서 나오는 생산량의 일부를 내는 것(재산세, 소득세), "공납"은 지역 특산물을 바치는 것이며, "역"은 노동력, 즉 군역이나, 공사들에 동원되는 것을 말한다.
9. 7번과 8번을 합하면 귀족들은 그 지역에서의 세금(3가지)를 모두 가질 수 있었는데 이것을 폐지한다고 하니...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10. "신문왕"은 특히 그 중 "역"을 이용하여 귀족들이 반역을 일으킬 것을 걱정하여 강력히 추진했던 것이고, 이런 "녹읍"을 대신하여 "관료전"을 지급하였는데, 세금 중 땅에서 나오는 "조세"와 "공납"만 가져라라는 것이었다.
11. 또한, 광활한 지역을 9주 5소경으로 하여 나라를 지역별 행정적으로 조직하였다.
12. 다음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어릴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가는 이유가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기 위해서였다.
13. 이 문화는 불교예술로서 만들어진 것이고, 이러한 독창성과 예술성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14. 또한, 에밀레종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명복을 빌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15. 이 당시 경주에는 약 9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17만 호의 집이 있었다고 하니 대략 계산해 보면 저 정도 수치라고 판단된다.
16. 이러한 통일신라도 신라의 골품제의 다양한 문제와 어린 나이에 왕에 즉위한 "혜공왕"으로 왕권의 권위가 추락하고, 심지어 피살되어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된다.
17. 신라의 골품제는 왕족(성골, 진골), 귀족(6두품, 5두품 4두품), 평민(3~1두품)으로 나눠지는데 진골들끼리의 다툼과, 각 지역별 호족들이 생겨나며 마찰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8. 호족 중 유명한 사람이 장보고이나, 골품제에 막혀 더 이상 왕족으로 갈 수가 없었다.
19. 다음 호족의 2세대들은 아예 나라를 세워버렸는데 견훤의 "후백제", 궁예의 "후고구려"인데 이런 시대를 "후삼국시대"라고 말한다.
20. 그러나 이러한 궁예도 결국 막무가내식 공포정치에 신하들이 등을 돌려버리고 처참하게 죽고 말았고,
21. 반대로 견훤은 기세가 대단했는데 심지어 신라를 계속 공격하고 경주까지 기습했었고, 신라의 왕까지 자신의 힘으로 다른 사람(경순왕)을 앉혀놓는 등 대단했다.
22. 그러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왕건의 힘이 차츰 커지면서 견훤도 밀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견훤의 왕위 세습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자식들이 견훤을 가둬버리고, 도망친 견훤은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23. 이러한 모습을 본 당시 왕인 경순왕은 나라가 쇠약하여 결국 왕건에게 항복하여 "후삼국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24. 당시 왕건은 궁예의 부하였으나 궁예의 신하가 등을 돌리면서 왕건이 앞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고 이후 고려를 건국하게 된 것이다.
25. 다음 편은 "고려" 편이다.
오늘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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