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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최소한의 한국사(1. 고조선, 고구려)

3. 독서, 건강/가. 독서, 지식

by 린이가족 2024. 3. 2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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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역사 과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나는...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아이가 나에게 역사에 대해 물어보면 부끄럽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어쩌다 외국인과 친해졌을 때, 또는 공식석상에서 나에게 역사에 관해 물어봤을 때 기본적인 것도 대답을 못하면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목에 이끌려 고른 역사를 정리한 책이 있어서 읽어본 소감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너무너무 쉽게 읽히고 그림이 그려져 3번을 읽었다.

 

물론 외우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근에 국립공주박물관을 갔을 때 아이에게 역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 수 있는 지식은 갖추게 되었다^^ 

 

그럼 이 책의 내용을 시대별로 간략하게 작성해보겠다.

 

이번 편은 "고조선"과 "고구려"이다.

 


 

먼저 고조선이다.

 

1. 누구나 알고 있듯이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한반도에서부터 현 중국의 일부까지 포함된 영토를 "단군"께서 세우셨다.

 

 

2. 단군은 환웅과 웅녀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한다. 이 환웅은 천신족으로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다.

 

 

3. 참고로 웅녀는 동굴에서 100일간 마늘을 먹어 사람으로 환생한 곰이었다.

 

 

4. "고조선"은 당시에 "조선"으로 불리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과 헷갈릴 것 같아 "옛 고"를 붙여서 불렀다고 한다.

 

 

5. 단군은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을 내세웠고, 그 뜻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다. 

 

 

6. 노래에도 나오지 않는다.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7. 어쨌든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존재한 나라이다.

 

 

8.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이 세워지고 기원전 108년에 멸망하였으니 2000년 넘게 존재했던 강대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

다.

 

 

9. 고조선은 위만조선으로 명칭은 변경되었으나 "한"이 쳐들어와 결국 멸망하였다.

 

 

10. 이후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의 시대가 시작이 된다.

 


 

 

삼국시대의 첫 번째는 멋지고 강한 고구려이다.

 

 

1. 고조선 멸망 후 철기문화를 통해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 많은 나라가 생기고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로 통합되었다.

 

 

2. 이 중 고구려가 가장 먼저 기틀을 잡았는데 그 시기는 2세기이다.

    * 백제는 3세기, 신라는 4세기

 

 

3. 다만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이 있는 한강유역을 차지한 전성기를 누린 나라는 백제가 먼저 4세기에, 다음으로 고구려가 5세기에, 마지막 6세기에 신라가 전성기를 누렸다.

 

 

4. 고구려는 초기에 북쪽에서 남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는 바람에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나, "소수림왕"이 태학(교육기관) 설립과 종교(불교)를 수용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5. 또한, 율령(법)을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고구려를 안정에 접어드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6. 소수림왕 다음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광개토태왕이 영토를 상당히 넓히기 시작한다.

 

 

7. 당시 고구려의 적은 백제였다. 참고로 고구려 초기 백제와의 전쟁 시 고국원왕(광개토태왕의 아버지)이 백제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을 정도로 적대심이 높았다고 한다.

 

 

8. 역시 광개토태왕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백제를 공격하고 한강 이북까지 차지하였고, 북쪽으로는 만주와 요동지역으로 확장해 나갔다.

 

 

9. 또한 당시 신라는 일본의 공격으로부터 위험에 처해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때 광개토태왕이 도와주었다.

 

 

10. 그 후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남쪽을 향하였고 이후 계속된 남쪽 방향으로의 공격으로 현 서울을 점령하였다.

 

 

11. 이로 인해 백제는 수도를 현재 공주로 옮겼다. 그래서 공주에 백제와 관련된 유물이 많은 것이다.

 

 

12. 이 때 여러 나라로 분리되어 있던 중국이 "수"로 통일이 되었고, "수"는 고구려와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할 수 없어 고구려를 무려 100만 명이 넘는 대군을 끌고 공격하였다.

 

 

13. 사실 지금도 100만 명을 데리고.. 그것도 육군으로만 데리고 공격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14. 그런 무리된 행동을 "수"나라는 고구려 공격을 위해 행동에 옮겼고, 고구려의 장수 중 한 명인 "을지문덕"이 100만 대군의 약점인 식량 보급 및 긴 행렬을 지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간파하고 조금씩만 싸우고 도망가는 척하였다.

 

 

15. 그 후 을지문덕은 사신을 통해 "항복"을 했고, 100만 군대가 돌아가면 황제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고 하였다.

 

 

16. 당시 공격했던 "수"나라의 장군도 믿지 않았던 것 같으나 이 많은 대군을 버티기가 힘들어 철수하였다.

 

 

17. 이때 "을지문덕"은 이들이 청천강을 건널 때 기습하여 총공격을 퍼부었고, "수"나라의 100만 대군 중 일부인 30만 대군을 공격한 결과 생존자는 불과 2,700명이라고 한다.

 

 

18. 이 전투가 바로 "살수대첩"이다.

 

 

19. 이후 "수"나라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존속하지 못하고 "당"나라로 변경하였고, 역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20. 이때 유명한 전투가 영화로도 나온 "안시성 전투"이다.

 

 

21.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의 수많은 공격에도 버티자 성의 높이만큼 옆에 흙산을 쌓았고, 공격하였으나 결국 많은 비에 흙산은 무너지고 결국 당의 태종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22. 고구려는 강인한 민족성을 가진 소위말해 파이터(?)들이 많았던 것 같다. 멋진 고구려인이다.

 

 

23. 이런 멋진 고구려도 내부적으로 많은 전투로 인해 국력이 쇠퇴하고, 권력다툼과 남쪽에 있던 신라와 중국의 당나라가 연합하여 공격하는 바람에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다음 편은 "백제"이다.

 

오늘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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